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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4. 우리들의 독재자(콩트) 본문

엄마의 꿈

4. 우리들의 독재자(콩트)

유튜브김오이 2017. 12. 2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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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난해도, 조금만 떠들어도 부모님 호출... 우린 「정숙」 입간판을 한번씩 발로 차고...


교장선생님께 불려간 장난꾸러기 동호 "이젠 죽었다" 했는데 할머니 수술비를...


 우린 동호가 눈가를 훔치면서 교장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 중앙 현관 대형 거울 뒤에 서서 교장실에 불려간 동호가 어떻게 되나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들의 예상대로 동호는 운 듯했고, 그 뒤를 그 애 할머니께서 따라나오셨다. 할머니는 뒤따라 나오는 교장선생님께 연신 고갤 숙이며 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말이려니 짐작했다.

 동호는 너무 속상했는지 우릴 보더니 고갤 돌리고 현관 밖으로 나가버렸다.

 동호와 할머니께서 멀어지는 걸 지켜보시던 교장선생님께서 몸을 돌려 현관으로 들어오셨다. 우린 실내에서 해야하는 목례조차도 하지 않았고, 교실을 향해 올라왔다. 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장난 조금 한 걸 가지고. 실내에서 조금만 떠들어도 교장실로 불려가고, 그 횟수가 많으면 학부모가 불려와서 아이를 데려가야 했다.

 2학기 들어서 벌써 열명도 넘는 아이들이 집으로 쫓겨갔다. 그 다음부터 그 아이들은 부모님이 무서워서라도 떠들지 못하고 죽은 듯이 지낸다.

 우리는 「정숙」이라 써놓은 입간판을 발로 한번씩 차고 교실로 돌아왔다. 곧 수업종이 울리고, 농업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교장선생님이 부임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는 즐거웠었다. 농업 시간엔 부엽토를 만들러 학교 뒤 성암산에 올라간 적도 있었다. 참나무 잎과 오리나무 잎들을 긁어모아 자루에 넣으면 선생님께선 썩지 못하는 것은 독이된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것의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해 보아라 하셨다. 우린 그 부엽토를 넣어 국화분을 하나씩 만들었다. 봄에 가지를 꺾꽂이해 옮기면서도 늘 그렇듯이 우린 소란스러웠고 즐거웠다.

 그러나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교장선생님이 새로 오셨고, 학교는 갑자기 푸른 활기로움을 잃어버렸다. 쉬는 시간 종이 땡- 치자마자 교장선생님은 1층부터 3층 옥상 입구까지 좌르륵 순회하신다. 복도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교실 자기자리 아닌 곳에 서있거나 계단을 뛰어내리거나 좌측통행을 않거나... 뭐든지 발견되기만 하면 교장실로 불려갔다. 꿇어앉아 벌을 서고 훈화를 듣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뒤 풀려날 수 있었다. 

 동호도 교장실에 많이 불려간 말썽쟁이 중의 하나였다. 동호 할머닌 학교 아래 시장통에서 야채장사를 하신다. 길바닥에 야채를 늘어놓고 온종일 앉아계시는 것이다. 그 돈으로 동호 책도 사고, 옷도 사고, 학용품도 사고... 동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함께 산다. 그래도 늘 쾌활하게 웃으며 장난도 잘 치는 동호를 우리 모드는 좋아한다. 동호가 한번은 화장실에서 몰래 너구릴 잡다가 레이더망에 걸려 교장실에 잡혀간 적이 있었다. 청소시간에야 교실에 돌아온 동호는 "두발 다 들었어"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무수한 금연자료 화보를 보여주고 흡연의 해악에 관계되는 수치를 외게 하고 컴컴한 과학실에서 환등기를 돌려가며 연기에 그을은 허파 사진을 보여주시더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 치밀함과 집요함에 질린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 얼마 이후로 동호는 무척 점잖아지기 시작했다. 공부같은 거 신경 안 쓰더니, 수학시간에도 열심히 문제를 풀고 심각하게 듣는게 아닌가. 우린 놀려댔다. "임마, 니 머리에 쥐날라, 두단위 가지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가." 그때마다 동호는 씨익 웃기만 했다.

 우린 어제 오후에 반대항 축구를 했었다. 그렇게 지독한 교장선생님이 무슨 마음인지는 몰라도 점심시간과 방과후는 마음껏 운동하는 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그 시간에야 겨우 숨통을 틔운다. 전후반 90분을 뛰고 나니 이미 교정은 어둑어둑했다. 우리가 봄에 심었던 국화분들도 어둠에 버려져 있었다. 교실에서 숨만 쉬고 갇혀 있느라 우린 그 꽃들을 살뜰히 보살피지 못했다.

 그래도 꽃은 피고 이제 저문 겨울 화단가에 버려진 듯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작년이 좋았다, 그쟈? 그땐 그래도 살아있단 느낌이 들던데."  "맞다. 요즘은 숨도 못쉬겠다. 언제 붙잡혀 갈지..." 우린 투덜대며 수도꼭지에 머릴 박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때 동호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꼭지 주둥이를 눌러 물을 우리한테 뿌리기 시작했다. 우린 자기앞의 수도꼭지를 모두 열어 물싸움을 시작했다. 운동한 열기 덕에 그 물줄기가 상쾌했다. 그때였다. "웬 놈들이야!" 사택쪽에서 교장선생님의 불호령이 날아왔다. 우린 수도꼭지도 잠그지 못한 채 줄행랑을 쳤다. 

 우린 오늘 아침부터 교장선생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동호만 불려가고 이내 집으로 쫓겨갔다.

 농업선생님께서 우리들을 힘주어 보시더니 수업을 마치고 우릴 부르셨다. 우린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죄다 말씀드렸다. 교장선생님에 관한 좋지 못한 감정들까지 조금 더 부풀려서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선 우리들한테 알밤을 한 대씩 주셨다.

 우린 농업선생님한테 알밤 한대씩을 더 맞고는 교장실에 가보기로 했다. 교장선생님은 여전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계셨다. R. ef 노래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떤 소식통에 의하면 영어회화 테이프라고 했다.

 "그거 R. ef 노랩니까?" 라고 궁금해 했더니, 이어폰을 빼고 영어회화를 크게 들려 주시더라 했다.

 우린 첨에 쭈빗거리다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싶어, 그동안 쌓였던 불만들을 좔좔 고했다. 어제 저녁의 그 잘못까지, 그리고 왜 동호만 집으로 쫓겨가야 했는지 그 이유도 알고 싶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우릴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그럼 자네들도 벌을 받아야겠구만" 하시면서 우릴 화단으로 데리고 가셨다. 이제 잎이 시들어 볼품없어진 국화분들을 가리키며, "이것들을 화단에 엎어서 꼭꼭 묻어두도록 하게, 내년 봄에 그 거름의 힘으로 더 예쁜 꽃들이 필 수 있게"라고 하셨다.

 우린 화단을 파고 화분들을 엎어 그것들을 정리했다. 그때, 동호가 교문을 들어서는 게 보였다. 동호는 우리들을 보더니 달려왔다. " 야, 너들 지금 뭐하고 있노?"

 우린 이렇고 저렇고 설명했다. "근데 니는 와 벌써 오는데? 오늘 충분히 반성하고 내일 와야제."

 동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얌마, 그게 아이다."

 우리들의 독재자 교장선생님은 동호네 사정을 아시고, 동호를 몰래 도와왔다고 했다. 동호 할머니께서 맹장염으로 수술해야 했는데 그 비용도 내주셨다는 것이다. 이제 몸이 어느정도 추스려지신 동호 할머니께서 오늘 아침 교장선생님께 인사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의 위로말씀을 듣고 할머니께서 울먹이는 바람에 우리들한테 아무말도 못하고 할머니를 모셔다 주러 갔다고 했다.

 그랬었다니, 우린 몰랐었다. "얌마,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교장선생님께서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하셔서."

 그래, 그렇다면 우린 우리들의 시간을 팍팍 죽여 거름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실내에서 조용한, 점잖은 신사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숨통이 꽉꽉 막히는 기분도 훨씬 덜해졌다. 일을 마치고 교실을 향해 돌아서면서 우린 교장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1996년 9월 12일(목요일) 주말영남 27페이지 콩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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