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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6. 산지기(수필부문 수상작) 본문

엄마의 꿈

6. 산지기(수필부문 수상작)

유튜브김오이 2018. 2. 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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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물든 산을 본다. 햇살에 떨어져 내리는 참나무 잎, 혹은 느릅나무 잎들이 지상에로의 회귀를 위해 산의 품에서 안기는 모습을...

 태어난 것들은 소멸해 간다. 11월의 산을 보면 온 곳으로 바르게 돌아가는 것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일임을 느끼게 된다. 회귀하지 못하는 많은 1회용 합성 제품들의 그 펄럭이는 남루를 보면... 그렇다... 인연을 이루어 햇살을 받다가 돌아가야 할 시간에 깨끗이, 눈물겹게 별리를 고하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내 마음 속에는 잎이 무성한, 산새 우짖는, 나무에 기대서면 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산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고운 햇살을, 될 수 있으면 따뜻한 바람을 이 산에 가둬 두고자 애쓰는 이름 없는 산지기이다. 그 산의 작은 풀잎 하나조차 내 손길에 다쳐지는 일이 없기를, 모든 것이 제 자리에서 햇살 가득 받아 하늘 높이 자랄 수 있기를 염원하는 그런.

 힘겨웠던 삶의 순간이 있었다. 내 산의 모양이 지리멸렬해 마음이 쓸쓸하고 아팠던 때... 아무것도 제 자리에 있지 않았고, 빛나는 햇살도 따뜻한 바람도 내 산엔 없었다. 휑하니 빈산에 목젖까지 잠겨 오는 그리움만이 가득했었다.

 오후 수업을 하다가 바람처럼 달려오는 기차 소릴 듣곤 했었다. 창 밖 저 멀리 벌판 끝으로 반짝이며 지나가는 기차의 초록 지붕을 보면, 언제나 달려가 타고 싶었다.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그 남쪽 어느 마을에 나는 내 아이를 두고 온 것이다. 돌도 채 안 된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엄마 얼굴도 잘 모르는 채 자라고 있을 것이다. 주말이 되어 달려가 보지만, 아이를 안아보는 건 잠시, 밀린 집안일이며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일요일은 어느새 후딱 지나가 버리곤 했다.

 고개 숙여 눈물을 감춘 채 봉화로 오는 막차를 타면 가슴엔 슬픈 강물이 고여 왔다. 아이를, 내 아이를 으스러지게 꼭 안아 보고 싶었다. 그 마알간 눈을 들여다보며 뺨에 내 얼굴을 부벼 보고 싶었다. 남편은 그렇게 가슴 저려하는 내 얼굴을 가만가만 쓸어 줄 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게 와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 몇 년 동안 그리움을 다독이느라 나는 늘 창가를 서성였다. 내게 주어진 산의 그 황량함이 나를 막막하게 했건만 내게 주어진 산지기의 기회는 내 산에 한에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란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기다려야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어도, 우유를 잘 먹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어도 엄마가 되어 달려가 볼 수 없는 아픈 마음을 철따라 아이 옷가지를 사며, 뜨개질을 하며, 장난감을 고르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이젠 또랑또랑한 일곱 살짜리 꼬마가 되었다. 나는 고향 가까이로 전근이 되었고 남편도 뜻을 이루진 못햇지만 형편이 좀 나아져 요즘은 아이와 함께 산다. 이 당연한 사실이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개구쟁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빨래를 만들어 내고 집안 구석구석을 엄망으로 어지럽히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퇴근하여 빨래며 청소, 식사 준비 등의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나는 아이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아이의 고운 얼굴이 가슴 가득 따뜻함을 채워 준다. 살아 있다는 것, 그리워한다는 것, 함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제 내 산도 모양새를 바로 잡은 것 같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가난하지만 제 곳에서, 햇살과 바람을 받아 무성해 있다.

 내 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11월의 회귀하는 나뭇잎들을 닮아 떠날 것은 떠나고, 남을 것은 남을 때가 오리라. 만난 것은 나뉘어지고, 태어난 것은 소멸해야 하는 이 지상의 안타까운 섭리 때문에 나는 오늘 더욱 내 산이 애틋해 보인다. 하여, 내게 주어진 이 고마운 산지기의 소명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내 소중한 인연들을 곱고 온전히 지키기 위해 번잡과 허욕을 벗어나고자 애쓸 것이다. 

 더불어 더 올곧은 바람과 너그러운 햇살을 내 산 가득 풀어 놓아 후박나무며 갈참나무, 토끼며 다람쥐들이 더 푸르고 더 활기롭게 꿈 꿀 수 있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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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엄마)의 허락을 맡아 장롱 속 원고를 쓱싹하여 업로드 합니다상업적인 목적의 스크랩은 불허하겠습니다스크랩 시 출처 명기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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