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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5. 담배씨 선생님(콩트) 본문

엄마의 꿈

5. 담배씨 선생님(콩트)

유튜브김오이 2017. 12. 27.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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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이혼으로 비뚤어진 천재학생맡아 골머리


엄격·자상했던 옛스승 회상하며 학부형 맞아


 승빈이를 돌려보내고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이는 빈 운동장을 고개숙여 걸어 나가고 있었다. 풀죽은 아이의 뒷모습은 나를 답답하게 했다. 부모 이혼, 조부모와 동거, 무조건적인 부정, 반항, 사회성 빵점... 중학교에 다니는 보통의 남학생이 보여줄 수 있는 장난기라거나, 고집이라거나, 엉뚱한 행동 정도면 귀엽게 봐 넘길 수도 있겠지만 승빈이의 모든 행동은 반 아이들에게, 교과 선생님들께, 그리고 담임인 내게도 무거운 짐이었다. 실내화도 명찰도 없이, 늘 지각에다가 청소 시간엔 당연히 사라지는데다, 급우들과는 늘 입씨름에 싸움질, 수업시간의 무례함. 그럼에도 성적은 언제나 전교에서 일등이니 가히 무서운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의 정신적 환경이 힘겹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빌미로 하여 그 아이가 그러하게 자신을 내버리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얘기를 나누어 그 아이의 가슴 한 구석 어딘가의 여린 곳을 뚫어보려 애썼다. 그러나 오늘도 실패했다.

 나는 서랍을 정리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오월의 느릅나무 잎들과 눈처럼 날리는 은백양꽃들이 눈 앞에 어지러웠다. 이럴 때 「담배씨 선생님」이라면 잘 해내실 것이다.

 그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승빈이를 바르게 이끌어 가실 수 있지 않을까.

 여학교 시절 잊지 못할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 선생님의 콧잔등에는 까만 사마귀 하나가 있어 웃으실 때는 그 사마귀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렇지만 그 선생님이 파안대소하시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늘 조금 성난듯한 표정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셨다. 복도에서 좌측통행, 명찰 패용등등 몸동작 하나하나까지 여성스러움과 예의와 절도를 강조하셨다. 남선생님이면서도 너무 세밀한 구석구석까지 간섭하고 지적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담배씨라 별명지었다.(좁쌀보다 더 작은 게 담배씨 아닌가?)

 그렇다고 언제나 그분이 우리의 숨통을 죄기만 하신 건 아니었다. 그분의 국어 수업시간은 기가 막히게 재미있고 화기애애했었다. 요점이 쏙쏙 귀에 들어와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것 같았다.

 한창 자라야 할 나이여서 우린 언제나 배가 고팠다. 2교시 후에 도시락을 까먹고 점심시간엔 군입거릴 찾아야 했다.

 교사 뒷담장 너머 구멍가게에선 맛있는 도우넛을 팔았다. 우리가 담장에 매달려 신호를 하면 가게집 아주머니가 잽싸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번번이 우리의 그 「비밀 거래」는 담배씨 선생님께 들키기 마련이었다. 교무실 복도에 엎드려 뻗쳐서 점심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면서도 우린 그 벌에 별로 자존심 구겨지는 일이 없었다. 미래 한국 어머니로서의 품위를 유지해 줄 것을 그 선생님은 누누이 주장하셨지만 미래의 한국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게 우리들의 신념(?)이엇던 것이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나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겨웠었다. 현실도피의 일종으로 나는 쉬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도서실에서 잡다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 덕분(?)에 2학년 중간고사 성적은 엉망이었다. 그런 어느날 도서실로 그 선생님께서 찾아오셧다.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이시더니 조심스러이 나를 타이르셨다.

 "야. 이놈! 덜된 천재야. 주변의 환경을 핑계삼아 너 자신을 게으름 속에 던져 두고 있다니! 노력하는 사람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없는 법이야!"

 나는 순간 그 말씀에 눈물이 핑 돌 만큼 감동해 버렸다. 내게 그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도 고마웠고, 「덜 된」이라는 꾸밈을 붙이긴 했지만 「천재」라고 불러주신 것도 고마웠다. 그 때부터 나는 힘을 내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이렇게 교직을 택한 것도 그 분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 날 이후 나는 빈틈 없이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고 너그러운 아이들의 바른 길잡이로서의 교사를 늘 꿈꾸워 왔으니까.

 승빈이는 나보더 더 엄청나게 「덜 된 천재」인 듯했다. 나의 말에 좀처럼 감동하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승빈이한테 연연해 하는 나를 그 애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충고해 주었다. 그 애 할아버지가 간곡히 부탁한 적이 있었다고. 승빈이가 어떤 짓을 하건 간섭도, 벌도 주지 말고 졸업할 수만 있게 해 달라고 했었다고. 그렇다고 그 애 할아버지 말대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튿날 승빈이는 결석했고 그 애 할아버지께서 휴게실로 찾아 오셨다. 그 애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길인가를 말씀드려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휴게실 문을 열었다. 창 가에 서 계시던 그 노인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콧잔등에 까맣게 돋아난 사마귀 하나를 보았다. "아니 선생님...."

 안경 너머로 힘 주어 보시는 그 분의 얼굴에도 반가운 웃음이 어렸다.

 "자넨, 덜 된 천재 아닌가.."

 이십여년 전 그렇게 엄격하고 자상하셨던 그리운 선생님이었다.



-1992년 5월 15일(금요일) 주말매일 26페이지 독자 콩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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