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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7. 창이 있는 집(수필부문 수상작) 본문

엄마의 꿈

7. 창이 있는 집(수필부문 수상작)

유튜브김오이 2018. 2.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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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이 무척 그리운 시절이 있었다. 늘 웅크리고, 떨며, 흐린 하늘 아래서 온 몸이 펄럭이던 때였다.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음에도 넷 모두가 뿔뿔이 나뉘어져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햇빛 가득 드는, 벽의 절반쯤이 창으로 되어 있는 그런 집에서 내 아이 둘을 꼭 끌어 안고 동화책을 읽어 주고 싶었었다.

 그 해 가을에, 우리들의 그 따뜻한 공간을 위해 남편은 공부를 포기했고, 나는 직장을 포기했다. 그리고 낯선 도시의 한 귀퉁이를 찾아들었다. 도시의 끝과 끝을 헤매다닌 끝에 우리들의 가난한 돈으로는 과분한 - 창이 크게 나 있는, 깨끗하고 조용한 - 방 한 칸을 구했고, 당장에 밥 끓여 먹을 그릇 몇 개만 달랑 챙겨들고 우리는 그 도시에 주저앉은 것이다. 상인동 1109-1번지. 외딴집 2층, 단칸방 사글세.

 주위엔 산과 들과 개울이 옛날 옛적처럼 펼쳐져 있는 참으로 인상깊은 곳이었다. 1층 주인집은 굉장한 부자였고, 이층 안채 역시 집앞 가구 공장의 사장이 살고 있었으니, 우리만이 이방인인 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았다. 남편도 나도 마음속에 넓은 창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침 준비며 도시락도 싸고... 일이 끝날 때쯤이면 아침을 몰고 오는 해가 대덕산 봉우리에 솟아오르고 들판은 기쁨처럼 빛이 가득 찼다. 베란다의 하얀 원주(圓柱) 사이로 들판이며 과수원, 저수지, 그 밑의 마을들이 바라다보이는 그 조망이 무척 좋았다. 내 유년에 길들여졌던 자연의 편안함. 낯선 도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날들에 그래도 가까이에 자연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됐다.

 집앞 길 아래로는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맑은 물이 바위들 사이로 흘러내려, 우리는 곧잘 개울에서 빨래도 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여름에는 그 곳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겁쟁이 도영이는 물에 발을 담그는 일조차 두려워했지만, 태영이는 신나하면서 물속을 첨벙거렸다. 빛나는 햇살에 몸뚱어릴 반짝이며 깔깔대는 두 아이들. 너무 예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냉장고를 시골에 두고 와 하루에 한 번씩 상인동 아파트 마을까지 장을 보러 가야 했다. 차가 다니는 길을 피해 탱자나무 울타리를 한 대추나무 과수원 옆길을 따라 시장까지 걸엇다. 도영이는 업고 태영이는 걸려서...

 길가에는 보리밭, 콩밭, 채소밭이 펼쳐져 있어 국민학교 때 소풍 가 본 길과 몹시 닮은, 멋진 시골길이었다. 집에서 아랫마을까지, 마을에서 버스 종점이 있는 아파트 마을의 시장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세 살바기 씩씩한 태영이는 투정 한 번 안부리고 잘 걸어다녔다. 아랫방 주인집 아이는 한 번도 그렇게 걸어오지 못했다는 그 길을.

 아파트 마을의 반찬가게 옆에는 장난감 가게가 있었는데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태영이는 장난감을 사 달라고 했다. 자동차며, 총이며, 비행기를. 그러나 나는 가난하여 거의 그 소원을 들어 준 일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떼쓰지 않고 선선히 물러서 주던 태영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시장 볼일을 끝낸 뒤에는 아파트 마을의 놀이터에서 미끄럼이며 그네를 타고 놀다가 돌아오곤 했다. 장난감 때문에 태영이가 마음 아플까 봐 그 곳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풀꽃도 따고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이런 외출에서 돌아오면 태영이, 도영이 낮잠 자는 시간. 그 때부터 나는 집안일에 매달려야 했다.장보아 온 걸 정리하고, 설거지, 청소, 반찬 준비...

 일이 끝날 때쯤 아이들은 깨고, 우리 셋이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을 때 얼마나 절실하게 그런 순간들이 갖고 싶었는지.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아이들은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커다란 창문턱에 걸터앉아 멀리 산이며, 들, 햇님, 허수아비 등에게 얘기를 한다.

 - 산 안녕 ! 햇님 안녕 ! 허수아비야 놀자. -

 외딴집에서 친구도 없이 -가끔 아래층 애와 놀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가끔이었다 - 두 형제가 친구가 되어 놀면서도 태영이와 도영이는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의젓해진 태영이, 영리해진 도영이. 아라비아 숫자들도 다 읽고 책의 그림들도 다 알고,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고... 총명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그 가난하고 외로운 방에서도 햇님처럼 곱고 환하게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남편은 일요일도 없이 늘 바빴다. 하던 공부를 두고 친구와 조그만 일을 벌인 그는 몸소 영업을 하느라 늘 늦게 돌아왔다. 그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고물 봉고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두류공원이며 달성공원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 아빠 목말을 타고 하늘 높이 팔을 뻗치며 까르르 웃음 터뜨리는 도영이. 공원 풀밭 사이를 신나게 달리는 태영이. 공원의 하얀 목책 울타리에 기대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가득가득 햇빛이 넘쳐났다.

 그런 어느 날, 늘 장난감이 부족했던, 그래서 아래층 주인집 아이의 장난감을 부러워하던 태영이가 그 아이의 장난감 기차를 만져보다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일이 있었다. 부엌 앞 베란다에서 같이 놀다가 기차를 서로 많이 만지려고 다투는 사이에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빨래를 하다가 아이 울음 소릴 듣고 쫓아 나가보니 아이는 계단 턱마다 몸을 부딪히며 굴러 내리고 있었다. 뛰어내려가 안았을 땐 아이 머리엔 피가 나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아이를 들쳐업고 뛰었다. 아이는 다행히 아래층 현관 모서리에 박혀 머리에 상처가 조금 났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기차 하나 사 줄 수 없는 그 절대적인 가난이 가슴저렸다.

 며칠 후 남편은 어디서 돈이 났는지 기차 하나를 사 왔다. 아이들은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했고, 아픈 내 마음도 어느 정도는 가라앉았지만...

 우리의 햇빛, 우리의 사랑, 우리의 삶을 확인하기에 바빴고 신이 났던, 그러면서도 너무 가난해서 쓸쓸하고 슬펐던 그 곳에서의 생활은 다음해 가을이 오기 전에 마감해야 했다. 더 이상 버텨낼 경제적인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직장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꿈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는 힘이 들어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넷이 함께 있다는 것. 그 따뜻한 연결이 바로 우리들의 삶에 창 가득 햇빛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아직도 많이 가난하고 힘이 들어 때로는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창은 크고 넓고 햇빛 가득 비쳐드는 아름다운 것이기에 사는 일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전신을 차가운 바람에 펄럭이면서도 내가 돌아가 가슴 가득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내 마음의 창을 조금 더 크게, 높게, 맑게 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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