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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1. 준이의 파랑새(1992년 매일신춘문예 동화당선작) 본문

엄마의 꿈

1. 준이의 파랑새(1992년 매일신춘문예 동화당선작)

유튜브김오이 2017. 11. 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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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상점물건에 자꾸 눈길이


엄마랑 민이랑 함께 있다는 것만도....



 수업이 끝나자 준이는 곧 집으로 향했다. 동생 민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학교 앞 아파트 동네 길가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준이는 상점 유리문 너머로 들여다 보이는 반짝이는 물건들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어쩌면 물건들이 저렇게 곱고 예쁠까? 금빛 추가 달린 벽시계, 알록달록한 모형기차, 동화책, 세발자전거, 신발....."

 준이는 멈춰 서서 하나하나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민이 때문에 안된다. 준이는 걸음을 빨리했다.

 아파트가 끝나는 곳에 두갈래 길이 나있었다. 하나는 나지막한 공장을 사이로 나있는 찻길, 또하나는 공장 마을 뒤 언덕 위로 나 있는 지름길이었다.

 준이는 공장 사이를 급하게 달리는 트럭들이 무서웠다. 그 트럭들은 어디서나 빵빵거렸고, 때로는 운전수 아저씨들이 창문 밖으로 고갤 내밀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준이는 가방을 고쳐 메고 마을 뒤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준이는 이 길이 마음 편하고 좋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비슬산 뒷줄기, 산자락에 비탈지게 늘어선 포도나무들, 원두막, 마을 뒤 느티나무 아래의 빈터.... 무엇엔가 쫓기지 않아도 되는 느긋함이 그 풍경 속에 숨어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고향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강이 느리게 굽이쳐 흐르던 마을 앞의 반짝이는 모랫벌을 떠올리고 준이는 고개를 저었다. 배추밭을 망가뜨리며 울던 아빠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에 준이네는 농사를 그만두고 고향을 떠났었다. 아빠는 집 앞 목공소에 일자릴 얻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엄마까지 언덕 아래 공장 동네의 실 뽑는 공장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돌아가면 민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목공소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2층집 방 한 칸이 준이네 집이었다.

 그 집은 목공소 주인인 안평 아저씨네 집이었는데 세들어 사는 사람은 준이네 말고도 또 한 집 더 있었다. 장롱을 만드는 목공 기술인 장씨 아저씨네가 옆방에 살았다. 안평 아저씨네도 장씨네도 모두 아이들이 없었다.

 민이는 종일 외톨이로 혼자 놀 것이다. 장씨 아주머니도 엄마와 같은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안평 아주머니는 그 큰 집을 쓸고 닦느라 민이와 놀아줄 겨를이 없을 것이다.

 집이 가까워지자 집 앞을 지나 아랫동네로 흘러가는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을 볼 때마다 고향 강가에서 놀던 생각이 났다.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엄마 아빠는 잠시동안 준이 민이를 강가에서 놀도록 허락하셨다. 강물은 맑고 깨끗했고, 모래는 부드러웠다. 물에 손을 짚고 물장구를 치거나, 모래에 웅덩이를 파거나, 모래성을 쌓고는 했다. 

 그 날들이 준이에게는 행복한 날들이었다. 유치원도 학교도 다니지 않아도 될 나이였었다.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엄마랑 민이랑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이사가 끝나자 곧 겨울이 왔다. 매일매일을 집 뜰이나 개울가에서 노는 일에 싫증이 나 있던 준이와 민이는 어느 날 약수길으러 가는 사람들을 따라 임휴사 가는 산길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집앞을 벗어나 들길을 지나고 포도 과수원을 지나며 민이는 호랑이 나타나면 잡아야 된다고 막대기 하날 집어들었다. 준이는 더 큰 놈을 주워 들었다. 바람이 씽씽 불어와 무척 손이 시렸다. 뒤돌아보니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약수를 길으러 오는 사람들도 다 가버렸나 보았다.

 "히야, 호랑이가 우리 잡아 먹으면 어떡하노?"

 "걱정마. 착한 어린이는 안 잡아 먹어. 여기 총도 있잖아?"

 막대기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민이를 달랬지만, 준이도 갑자기 무서워짐을 느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 이야기 속의 호랑이가 생각났다.

 민이를 돌려 세우고 내려우는데 민이는 추위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준이는 눈물로 얼룩져 빨갛게 언 민이 볼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는 그 애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한번도 민이를 업어본 적은 없었지만 민이를 업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어서려다가 둘다 넘어지고 말았다. 준이는 울고싶은 걸 참고 민이를 일으켜 꼭 끌어안아 주었다.

 "자, 우리 여기서부터 누가 먼저 달리나 내기하자"

 준이는 막대기로 금을 그었다. 그때 포도 과수원 사이로 안평아저씨 차가 나타났다. 엄마 아빠가 차에서 뛰어내려와 준이와 민이를 부둥켜 안으셨다. 이렇게 해서 산에 가는 일은 당분간 그만두어야 했다. 그 겨울을 뜰과 집앞 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보내야 했지만, 베란다의 하얀 원기둥 사이로 보이는 앞산은 그 후에도 언제나 푸근해 보였다.

 지난 겨울이 그렇게 지나가고 올해 봄에 준이는 입학을 했다. 처음 보는 준이네 학교는 무척 크고 으리으리했다. 수많은 창들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고,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준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미끄럼틀 밑에 서있었다. 좁은 운동장에는 나무도, 벤치도, 놀이기구도 적었다.

 고향 국민학교의 넓은 운동장이 떠올랐다. 동글동글한 열매가 떨어지던 큰 나무그늘과, 부드러운 강모래가 가득 깔려 있는 운동장 한 켠의 놀이터도 생각났다. 미끄럼틀, 회전그네, 시소, 목마, 이름도 모를 그 많은 놀이 기구들이 매달려 있어 마을 학교에 놀러 가기만 하면 타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탈 수 있었다. 

 준이는 낯선 많은 것들에 풀이 죽어 돌아왔다. 고개숙인 준이의 손을 꼭 잡아주며 엄마는,

 "이제 준이는 공부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곧 알게 될거야" 하시며 힘을 돋우어 주셨다.

 엄마 말대로 준이는 새롭게 만나는 모든 것들과 곧 친해졌다. 공부, 친구, 학교, 선생님, 이 모든 것들과.

 처음에는 차갑고 멀게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따뜻하고 편안한 것으로 다가왔다. 아파트에 사는 민혁이네 집에서 가끔씩 놀다 오기도 했다. 민혁이네 집에는 장난감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중 제일 갖고 싶은 건 알록달록 색칠을 한 장난감 기차였다. 레일 위를 땡땡땡 종소리를 내며 달리는 그 모습은 너무 앙증맞고 귀여웠다.

 준이는 장난감 가게에서 그와 똑같은 기차를 여러번 보았었다. 어느 일요일, 시장가는 엄마를 따라 가서 준이는 엄마를 졸랐다. 그게 정말 꼭 갖고 싶었다. 민이와 함께 기차 놀이를 하면 너무 신날 것 같았다. 가게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돌아나온 엄마는 준이를 내려다 보셨다. 비닐봉지를 들고 계신 엄마의 얼굴이 오늘따라 힘없고 쓸쓸해 보이셨다. 엄마가 준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그 기차 갖고 싶지?"

 "응"

 "엄마도 알아. 하지만 그 기차는 엄마가 사줄 수 없을 만큼 비싸단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사줄게. 그 때까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자, 응?"

 준이도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무척 힘드시다는 걸. 농사를 지을 때 진 빚이 아직도 남아 있어 아빠 월급날이면 우체국에 가서 엄마가 고향으로 돈을 보내시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준이는 민이 손을 잡고 엄마 앞에서 뜀박질을 시작했다. 기차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그 며칠 뒤 아빠가 목공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무 토막을 예쁘게 손질해서 바퀴까지 달아 만든 장난감 기차를 가져다 주셨다. 물감으로 색칠까지 알록달록하게 한 예쁜 것이었다. 준이와 민이는 "우와-"하면서 팔짝팔짝 뛰었다. 민혁이것만큼 앙증맞게 예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예뻤다.

 그 다음날부터 엄마는 실 공장에 다니셨다. 준이는 집안 형편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혼자 종일 지내야할 민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학교 가는 일도 전처럼 신나지 않았다. 자꾸만 집 쪽을 뒤돌아보며 걸었다. 준이만큼 씩씩하지 못한 민이는 대문을 나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아빠 공장까지도 혼자 가질 못했다. 블록을 쌓다가, 기차를 밀다가, 그림책을 보다가,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요구르트를 꺼내 먹기도 하고,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다가, 계단을 내려가 뜰을 뛰어다니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민이는 잠이 들 것이다.

 잠 속에서 엄마의 품을 만나고 민이는 빙그레 웃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면 혼자 있는 일이 무서워 울어 버릴지도 모른다. 

 민이를 생각하며 준이는 집에 닿았다. 방이 조용한 것 같았다. 준이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이는 기차를 안고 잠들어 있었다. 울었는지 볼에는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준이는 가방을 벗고 민이 뺨에 가만히 얼굴을 대어 보았다. 민이가 눈을 떴다.

 "히야" 하며 목에 매달렸다. 준이는 민이를 일으켜 앉히고 주머니 속에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아침에 엄마가 주신 것이었다.

 "이것으로 우리 사탕 사먹으러 갈까?"

 민이가 좋아라고 따라 일어섰다. 대문을 나서며 민이는

 "히야, 푸들 나쁘다?"고 했다. 마당에 내려갔을 때 민이를 물려고 했다는 것이다. 준이는 알고 있었다. 겁쟁이 민이가 그 강아지를 무척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그 강아지가 민이를 물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강아지를 보고 민이 혼자서 놀라고 두려웠을 걸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준이는 민이 손을 꼭 쥐고 공장 마을 쪽에 있는 구멍가게를 향해 걸었다.

 아빠 목공소에서 나무켜는 소리가 쌩쌩 울려 나오고 있었다. 톱밥 가루가 길에까지 수북 쌓여 있었다. 준이는 얼른 그 곳을 지나쳤다. 아빠는 그 가게까지 내려가는 걸 질색하셨다.

 그 구멍가게에서 두 집 건너 엄마가 다니시는 실공장이 있었다. 언젠가 거기에 민이를 데리고 갔다고 혼난 적이 있었다.그 길은 민이 같은 꼬마가 다닐 길이 못 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준이는 민이가 좋아하는 알사탕을 꼭 사주고 싶었다. 민이를 조심시켜 걷게 하면 그 길도 괜찮은 것이라고 믿었다.

 가게에 들어가 알사탕을 한봉지 사서 민이한테 주었다. 민이가 엄마한테 가 보자고 졸랐다. 준이는 엄마 공장 쪽을 향해 걸었다. 민이는 한 손에 사탕을, 한 손에 준이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따라 걷고 있었다. 준이는 꽤 여러 번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민이는 참으로 드문 외출인 것이다.

 "어, 히야 사탕 -"

 손을 놓고 길로 뛰어드는 민이를 잡을 새도 없이, 앞에서 트럭 하나가 닥쳐 들었다. 준이는 "안돼요" 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참으로 다행히 그 짐차는 순간적으로 방향을 돌려 실공장 맞은 편 창고에 앞머리에 박고 멈춰 섰다. 운전수가 내려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민이는 떨어진 사탕을 주우려다가 놀라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온 준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실공장 쪽에서도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었고, 곧 엄마가 달려오셨다. 엄마는 아무말도 없이 겁에 질린 준이와 민이를 꼭 끌어 안으셨다. 준이는 엄마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준이도 목이 꽉 잠겨 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 날 이후로 민이는 다시 엄마와 함께 놀 수 있게 되었다. 준이도 학교 가는 일이 이제 싫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아빠와 엄마 민이 함께 대문을 나서면 아빠는 목공소로 들어가시고, 엄마는 민이를 데리고 개울둑을 따라 언덕길로 접어드는 곳까지 준이를 데려다 주셨다. 햇살을 받아 맑은 개울물은 반짝이며 흘렀다. 발목이 조금 넘게 흐르는 얕은 개울물이었지만 준이는 여름이 오면 이곳에서 민이와 물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골 강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면 얼마나 신날 것인가. 겁쟁이 민이는 물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겠지만, 땅 짚고 물장구치는 걸 가르쳐 주면 재미있어 할지도 모른다.

 준이는 이제 상점에 가득한 장난감과 예쁜 물건들을 하나도 못 가져가도 좋을 것 같았다. 집에 엄마와 민이가 함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좋았다. 민이 얼굴에 눈물 흐르지 않고 그 작은 마음이 외로움으로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준이는 그것만으로도 언제나 기쁠 것이다.

 이 햇살 가득한 세상, 가난한 작은 방에 부지런한 아빠와 다정한 엄마와 예쁜 동생과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준이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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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월 6일 매일신문 20페이지, 92 매일신춘문예 동화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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