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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을 보며 든 단상, 본문

일상다반사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을 보며 든 단상,

유튜브김오이 2018. 2. 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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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소지가 있을 글을 시작함에 앞서, 아래 조금 과격하게 표현되었을지 모를 특정 직군이나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임을 밝히며, 비판은 수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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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이 최영미라는 시인의 폭로로 수면위에 드러난 듯 하다. 고은 시인 뿐 아니라 문학가, 예술가에 대한 환상은 SNS가 일상화되는 요즘에 와서 거의 없어진 듯한데 이는 SNS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고은 시인을 비롯한 몇 예술가들의 민낯이 들통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글쟁이, 특히 "시인"이라는 직군에 대한 단상을 옮기도록 한다. 


 모든 사람은 가슴에 시를 품고 산다. 시란 어떤 추상적인 마음의 뭉탱이 같은 것이다. 일상의 언어로는 설명해내기 힘든 그러한 감정의 한 자락을 시적허용을 통해 거침없이 토해내는 것이다. 시는 시인의 내면 그 자체다. 대개는 아름답거나 벅차다. 간혹 어설플지라도 정제되지 않은 그런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시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그로 인해 몇 시인은 명성을 얻고, 어떤 이는 그로 인해 사회적 지위와 부를 획득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좋은 글을 써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부를 얻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소설이든 시든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해서 거기에 대한 정해지지 않은 대가를 받는 것이니까 전혀 비난받을 바가 아니다. 



 하지만 시를 쓰는 목적이 사회적 지위나 부라면 그 이야기는 다르다. 비난받아야 하기보다는 조금 애처롭다. 긴 장편소설이나 산문으로 구체적으로 본인의 생각과 감정, 이상을 표현하기에는 섬세하게 스토리의 구성을 짜맞추어야 하는 장르의 특성상 귀찮아서, 혹은 능력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감정과 이상에 대해 뭐든 표현은 하고 싶은 마음에 시를 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굳이 남들에게 좋게 보여지기 위해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선별해 일정한 형식으로 출판하며, 본인이 시를 쓴다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주지시켰을 것이다. 대개 그런 자들은 시를 쓰는 행위 자체에 몰입한 사람이기 보다는  대개 그만큼 과시욕과 인정욕구가 넘치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시인이라는 추상적인 타이틀 외에 현실사회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위치가 거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고, 파벌과 계파를 만들어 본인이 어떤 직군에서 어떤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어떤 시인은 본인이 시만 쓰더라도 최저 생계가 보장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정말 어불성설이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에 시를 품고 산다. 그것을 업으로 삼지 않는 이유는 시를 쓰는 것 자체가 무슨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어서가 아니고, 그 시라는 것만으로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수익구조상 자본을 획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본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사회적으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다양한 삶에 대한 감정과 소회를 표현하는 시인은 논외로 하고, 생계유지를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그저 떠오르는 대로 떠들어대기만 하다가 부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본인의 생계에 대한 책임을 사회에 돌리려는 '시인'이 있다면 그건 명백히 이곳저곳을 갉아먹는 '사회악'이며, 이는 주장이 아니라 사실인 명제이다. 시는 그냥 본인의 내면을 추상적인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걸 굳이 모임을 만들고, 권력관계를 형성해 본인이 획득한 그 아무런 의미없는 권력을 휘두르며 추태를 부리는 것은, 그들이 쓰는 시의 지향점과는 전혀 다른 적폐의 모습이고 우스울 뿐이다. 그들이 대개 비판하는 재벌가나 부패한 정치인, 공직자와 다른점은 적폐시인들은 그들이 욕하는 적폐세력들도 가지고 있는 아주 적은 양의 사회적 순기능이나 세상을 원하는대로 좌지우지할 능력도 없이 단지 그들 안에서 권력을 휘두를 뿐이란 것이다. 애처로운 권력이다. 시는 아름다울 수 있으나, 그들이 쓰는 시의 지향점만큼 아름다운 삶을 사는 '시인'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아름다움과 옳음, 정의로움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는 예술가, 사회운동가, 소설가, 페미니스트 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던 어느 소설가가 나와 관련된 사람과의 비윤리적인 일탈을 행했던 걸 알고 크게 실망했다. 또 한 친구는 평소에는 하루 온종일 SNS에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페미니스트인데, 내게 SNS를 통해 알게 된 어린 여성과 쉽게 잠자리를 해서 좋았고, 요즘 애들은 다 이러냐는 말을 했다. 아마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로 관심을 끈 후 본인의 욕망을 내비치며 이성에게 어필을 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 진정한 양성평등의 사회를 꿈꾸는 양 말하는 녀석의 모든 말에서 성취하지 못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 연애를 많이 해보지 못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이성의 관심을 갈구하는 욕망의 사인을 읽고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를 제외하고도 몇몇이라고 하기에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상당수의 사람들로부터 인기영합의 수단으로 페미니즘을 소비하는 행태로 해석되는 사인을 읽어서, 주관적으로 내린 판단에 더욱 확신을 기하게 되었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막 대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라도 모욕하지 않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은 굳이 페미니스트란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다짐하고 주지시켜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당연히 그러해야 할 일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란 기치를 든 사람들은 사회적 관습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성적 차별행위에 대해서, 사회적인 담론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정도로 불평등하다고 공감을 이끈 의제 정도만 논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물론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들 중 "몇몇"은 매사에 기울어진 운동장과 유리천장을 들이밀고, 본인들만의 일방적인 논리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반대편에 있는 모든 대상을 설득하기 보다는 적으로 규정하고 날을 세우고 조롱한다. 물론 보통의 경우 그들 주장에 대한 근거논리가 빈약한 경우가 많아 이성적인 사람을 설득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논리적 근거부족을 조롱이나 스스로 정신승리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정말 미성숙한 태도라 생각한다. 언제나 설득될 준비를 하고 있는 태도가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태도가 아닐까 한다. 논의에 대한 그런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한 친구들을 마주했을 때에는 그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일지 대충 예상해 보고 말을 아끼게 된다. 



 경험이 일천하면 원칙론을 내세운다고 했다. 삶의 모습은 여러 측면에서 여러가지 양상을 띄고 있는데 매사를 선으로 긋듯이 선악,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는 없다. 괜한 공명심에 현실과 괴리된 정의만을 부르짖는 건 용기이지만 또한 인식한 현실문제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게으른 만용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하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며 본인의 삶이 어떤지를 성하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언어를 말하는 시인의 더러운 추태를 본 소회를 풀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글을 맺으며,


 시인은 남들보다 조금 더 감수성이 풍부하거나, 자기애가 강해 그러한 감수성을 펼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 그것이 조금도 대단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선문답같이 늘어진 언어들을 내놓고, 그에 근거해 우월감에 도취되기 쉬운 사람이 아닐까? 또한 그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건 그 시인이 어떠한 인간군상인지 알게 되기까지인 것일까? 비록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다는 고은의 시는 읽지 않았지만,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릴 정도라면 작품에 대해서는 그만큼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결과였을텐데, 그런 유명한 시들도 추태로 얼룩진 사람의 발상에서 나온 거라면 오롯이 문학작품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 글을 마치고 고은의 시를 읽으러 가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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