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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무 비제이 김오이의 일상다반사
3. 노랭이 시부모가 준 선물(콩트) 본문
시집 부모 아들 실직때도 사사건건 돈 요구
피서 가려다 호출된 남편 손에 땅 문서가...
결혼하고 한번도 휴가여행이런 걸 가본 적이 없었다. "휴가 여행이라니..."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조차 잊을 만큼 동희는 돈에, 시간에 쫓기며 힘들게 살아온 터였다.
작년 말에 그 지긋지긋하던 아파트 융자금을 다 갚고 그 때 동희는 생각했었다. 이번 여름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엘 꼭 다녀와야겠다고. 휴가철이라고 특별히 상여금이 나오는 직장도 아니고 해서 연초부터 다달이 10만원씩을 저금해 왔었다.
흐르는 바람 속에서 수박 냄새같은 여름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아파트는 술렁대기 시작했다. "누구집에선 텐트를 샀다" "누구 집은 수영복을 샀다"는 소식을 동희한테 전하며 "우리는 안사?" "우리는 바다 안 가?" 아들 민수가 조바심을 냈다. 그래, 가자. 우리도 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견디며 모든 편안한 것, 자유로운 것, 화사한 것들과 떨어져 생활했던가.
꿈이라는 것, 낭만이라는 것, 시, 음악.... 아아, 그리고 바다, 바다를 얼마동안이나 잊고 살았던가. 지금도 눈 감으면 금방이라도 동해 강구 앞 바다를 힘차게 날아오르던 4월의 은빛 갈매기를, 설악산 앞바다의 눈부시던 가을 태양빛, 남해 상주리의 금빛 밤바다를 기억해 낼 것만 같은데 그 바다를 도대체 몇 년 동안 잊고 지냈단 말인가. 악바리처럼 살았던 지난 6년 동안이 새삼 진저리쳐지는 기분이었다.
결혼하고 남편은 곧바로 사표를 냈었다. 고시공부를 한다는 명목이었다. 동희는 결혼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리란 걸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고시공부는 소설 속에나 나오는 단어인 줄 알았던 동희였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은 동희를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시어른들과의 관계였다. 시집이 조그만 사업을 하는 집이라 인근에서는 알려진 부잣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동희한테서 돈을 요구했다. 명절, 생신, 방학...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모아 둔 돈을 다 긁어 갖다 드려야 했다. 아이를 맡기고는 아이 양육비, 분유값, 어른들 밑반찬 값, 모든 돈이 동희 손에서 나갔다. 아들이 실직 상태에 있고, 며느리 혼자 번다는 생각을 한다면 다른 부모들 같으면 도움을 주면 주었지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단돈 1원도, 쌀 한 톨도 보태 주지 않았다.
둘째 놈이 태어나고 큰 아이를 시집에서 데리고 와 허름한 아파트를 하나 샀다. 모아둔 돈이 없으니 그야말로 땡빚을 내어 산 셈이다. 그 빚을 갚느라 얼마나 혼쭐이 났던가. 몇 번 실패한 뒤 남편은 공부를 그만 두고 고향 사람이 사 둔 땅을 거의 무료로 빌려 시설 채소 재배를 시작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린 보람이 있어 어느 정도 고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다. 동희의 월급과 남편의 수입으로 은행과 보험회사와 친구들에게 빌려 온 돈을 조금씩 갚아 나갔다. 그 동안 아이들 옷 한가지, 장난감 하나 변변히 사주지 못했다.
남편 옷도, 동희 옷도, 화장품도 물론이었다. 처녀 때 입던 낡은 옷을 입고 치장하지 않고 다니며, 동희는 화사한 자신을 꿈꾸어 보기도 했다. 그런 모든 화사한 꿈들을 유보해둔 채 악바리로 살면서도 시어른한테는 소홀할 수가 없었다. 매주 쇠고기를 사들고 찾아가 뵈어야 했고, 명절이면 명절, 생신이면 생신상을 번듯하게 차려야만 했다. 방학이면 또 거의 시댁에 가서 그 큰 살림을 살아 내느라 없는 돈을 가지고 전전긍긍해야 했다. 이 일들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쩌렁쩌렁한 시어머니 목소리가 집안을 휘저어 놓곤 했다. 한 톨의 쌀도, 한 닢의 돈도 가벼이 여겼다간 벼락이 났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두려워했다. 절대로 과자를 못사주게 하셧고, 간식거리는 동희 손으로 만들어 주게 했다. 앉음새며, 걸음새, 노는 모양이 버릇 없으면 호통을 치셨다.
가끔씩 아파트에도 들러 조금이라도 잘못된 게 있으면 엄하게 나무라셨다. 동희는 안그래도 가난을 견뎌내기가 힘겨운데 시어머니 그 간섭까지 견디자니 정말 어려웠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학 시집살이는 일단 접어두고 바다로 떠날 요량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밭에서 돌아온 남편은 주인이 밭에 나와 그 밭하고 옆자리 논까지 팔렸다는 통고를 하더라고 했다. 그렇다면 바다로 홀가분하게 떠나기는 글렀다. 침울한 기분으로 있는데, 시아버지께서 시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급히 돈 50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전화를 해왔다. 이젠 정말로 글렀다. 남편은 부랴부랴 돈을 챙겨 떠나고, 동희는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 재운 뒤 오후 내내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잘못 본 것일까. 어두워 오는 뜰을 남편이 막 달려 오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빨리 남편이 돌아오다니... 그렇다면 시어머니가 위독?' 동희는 벌떡 일어나 계단을 뛰어 내려 갔다.
계단 입구에서 마주친 남편은 "어? 당신! 이것 봐. 이것! 김 석준, 내이름. 내 이름 맞지? 우리가 부치고 있는 그 논밭 문서야. 그동안 부모님께서 당신한테서 착취(?)해간 그 돈의 행방을 이제야 알겠지. 우리 휴가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조금 전에 잔금 50만원을 치르고 법원에 등기 이전하고 오는 길이라구" 하면서 그사이 눈물이 찔끔 나 있는 동희를 번쩍 안아 올렸다.
-1991년 8월 9일(금요일) 주간매일 26페이지 독자콩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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